서랍에 넣어두기만 했던 필름 카메라를 오늘 처음 꺼냈어요.
산 지는 2년 됐는데 필름 값이 아까워서 계속 못 찍고 있었거든요.
그러다 오늘 날씨가 너무 맑길래 그냥 들고나갔습니다.
동네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걸렸어요.
골목 담벼락, 슈퍼 앞 평상, 늘 지나치던 은행나무 이런 것들만 찍었는데
막상 뷰파인더로 보니까 평소에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.
필름 한 롤이 24장인데 그중 반 넘게는 그냥 하늘만 찍었습니다.
뭘 잘 찍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‘오늘’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.
여기 분들도 이렇게 서랍 속에 넣어두기만 한 물건 하나쯤 있으실 것 같습니다.
요즘 가계부도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
필름값 카메라값 적어놓고 보니 이것도 저한테는 꽤 큰 결심이었더라고요.
뭔가 시작한다는 게 늘 이렇게 별거 아닌 계기로 되는 것 같습니다.
현상은 다음 주에 맡기려고요.
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.
긴 글 죄송합니다.
